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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의 전환

경이 / Vehicle

이 초고속 주행은 혁명입니다.

출처: 오시리스의 시험 무결점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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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의 전환

이 초고속 주행은 혁명입니다.

"다시는 그녀 얘기를 하지 마." 오시리스가 엑소 타이탄에게 쇳소리로 따졌다. 시끌벅적한 격납고의 소음 위로도 그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십여 미터 떨어진 도약선의 그림자 아래서 까마귀와 홀리데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막 도약선에서 하선한 그들은 까마귀의 뛰어난 반사신경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의 말다툼에 직접 휘말릴 뻔한 상황이었다. 오랫동안 첩보 활동을 한 덕분인지, 사적인 대화에 대한 그의 육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능력이 현장에서뿐 아니라 집에서도 쓸모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젠장." 오시리스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홀리데이가 중얼거렸다. 까마귀는 그녀를 바라보며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저 엑소는 누구지? 다시는 얘기하지 않아야 할 '그녀'는 또 누구지? "나중에 얘기해 줄게." 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한 후 은신처를 빠져나왔다.

"홀리데이!" 까마귀가 다급히 외쳤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그녀는 벌써 엑소의 곁에 서서 상냥한 태도로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선택지를 검토했다. 일이 아무리 수월하게 진행된다 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긴장의 연속이었다. 탑에서 가면을 쓰는 수호자는 많지 않았다. 그도 어서 가면을 벗고 싶었지만, 그가 얼굴을 내보였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면을 쓰고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수상해 보일 것이 분명한 만큼, 언젠가는 누군가 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할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저 엑소는 헬멧을 쓰고 있었고, 홀리데이도 그 사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얼마 전 까마귀의 가면을 받아들인 것처럼.

게다가, 영원히 가면을 쓰고 있는 것과 그림자 아래에 숨어 있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수상하겠는가? 까마귀는 태연해 보이려고 애를 쓰며 계단 아래에서 나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홀리데이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힘 쓸 일 있으면 제게 말씀해 주세요. 아셨죠?"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미처 짐작해 볼 틈도 없이 엑소는 그를 돌아보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누구지? 조금 마르긴 했지만 움직임에 힘이 느껴지는군. 헌터일 것 같은데."

까마귀가 머릿속으로 열심히 고민하고 있던, 전혀 수상쩍지 않은 인사말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목이 죄어 오는 느낌에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홀리데이가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등을 찰싹 때렸다.

"이쪽은 까마귀라고 해요. 기갑단과 관련된 첩보를 맡고 있죠." 그녀가 말했다. "까마귀, 이쪽은 세인트-14이야. 그러니까… 음, 대단한 분이신데, 일단 지금은 오시리스의 시험을 운영하고 계셔."

오랜만에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워졌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깜짝 놀란 표정이 두 사람에게 드러났을 테니까. 물론 그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여기에서는 존경심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그리고 뒤엉킨 해안에서는 경멸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하지만 둘 중 어느 쪽도 지금 쾌활하게 그의 팔뚝을 잡은 타이탄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첩자의 본능이 다시 한 번 그를 구했다. "정말인가? 이거 재미있군." 까마귀는 조금 더 강한 힘으로 상대의 팔뚝을 맞잡으며 말했다. "다들 시험이라고만 얘기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시리스와 관련이 있는 줄은 몰랐는걸."

타이탄은 멋쩍게 쿡쿡 웃으며 물러섰다. "그는 워낙 중요한 일들에 많이 관여하고 있어서, 난 그냥 도울 수 있는 걸 돕는 거지."

"그냥 돕기만 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홀리데이가 그의 말을 정정했다. "그분도 당신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네요."

까마귀는 세인트를 바라봤다. 오시리스가 누군가에게 빚을 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남을 돕는 일을 빚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 친구. 우리는 누구나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밴시만 빼고." 그는 두 사람에게 윙크라도 하는 듯한 태도로 덧붙였다. "그 친구는 확실히 내게 미광체를 빚졌어."

까마귀는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웃었다. 놀랍게도, 그는 세인트가 정말 좋았다. 그리고 자신도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서글서글한 사람이 오시리스 같은 위협적인 인물과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퍼뜩 상념에서 깨어난 그는 홀리데이가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 홀리데이의 말을 들었다. "…모든 일이 공평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갑자기 세인트의 태도가 달라졌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는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전투에서 동료가 쓰러지면, 상대가 힘을 되찾을 때까지 부축해 줘야 하는 법이다. 너 자신까지 상처를 입는다고 해도 말이야. 그래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의 어조가 까마귀의 머릿속에 큰 울림을 남겼다. 세인트와 오시리스가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알아 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기 등 뒤를 지켜 줄 누군가가 있다는 자신감과 안도감을 느낀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같은 대의를 위해 누군가와 함께 싸운다는 건? 가슴이 아릴 만큼 알고 싶었다.

"늘 그렇듯이, 만나서 반가웠다, 홀리데이 양. 그쪽도, 비쩍 마른 까마귀 친구." 세인트는 그 말을 남기고 멀어져 갔다.

까마귀는 어깨가 떡 벌어진 타이탄이 아무렇지도 않게 군중을 헤치고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만나서 반가웠다." 그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늦어서 이제는 듣는 사람도 없었다.

홀리데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까마귀는 날선 눈빛을 그녀에게 던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지금이라도 설명하려는 걸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세히 얘기하자면 너무 길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술잔을 앞에 놔야 얘기할 마음이 생길 것 같은데. 이번엔 당신이 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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